코로나 시대에 국제이사하기

올해 2월, 주말 아침 침대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중국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뉴스와 루머들을 보면서 불안해 할 때까지만 해도, 2020년 한 해가 코로나 시대로 불리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는 일상이 온통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것이 최우선이 된,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하필 이 시기에 이사를..?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사를 결정한 이유는 코로나 시대의 영향이 너무나 컸다. 올 한 해 내내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볼 수 없었기에,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일상을 벗어나는 계획을 세워봤자 매일 새롭게 바뀌는 정부의 쿼런틴, 락다운 정책에 맞닥뜨려 이내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집에서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6개월 동안 재택근무를 하면서, 과연 이게 끝은 날까, 아니라면 적응은 될까, 버티다 보면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시기가 끝나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날이 올까? 자문해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속 대답은 '아니오' 였다. 그렇다면 희망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까. 엄청 적극적으로 고민했던 건 아니지만 이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건 싫다는 게 결론이었다.

 

나는 캐나다에서 3년, 남자친구는 7년이 넘게 지내오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사실 캐나다에서의 삶은 '쉽다'. 서울과 파리에서 말도 안되는 노동조건과 복잡한 도시생활에 시달리던 우리는 비슷한 꿈을 찾아 여기로 왔고, 우리 모두 여기에서의 삶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여유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부분만 보면 사실 지금도 여기 생활에 대해 딱히 불평할만한 거리를 찾지 못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모두 근원을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가족을 만들고, 아이를 키우고, 은퇴하고, 여기에서 죽을 때 까지 살기를 원하는가? 스스로 질문해보니 결정은 쉬웠다. 분명히 고국을 떠나올 때는 경쟁 사회에 대한 염증을 느껴서 떠나왔지만, 아무런 외부 자극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 또한 다른 종류의 불만족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또한 여기의 겨울을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 겨울에는 오후 서너시면 해가 진다. 겨울은 11월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5월까지 이어진다. 2020년은 겨울과 코로나가 이어지면서 집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상황을 비교해보았을 때, 한국보다는 프랑스로 가서 정착하는 게 조금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남자친구의 향수가 나보다 조금 더 심하기에 프랑스 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작년 즈음부터 이미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만나면서 둘 중 한명의 나라로 가는 게 거의 유일한 옵션이기도 했고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제 3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지긋지긋한 비자 문제와 정체성 문제가 더 커지지는 않길 바랬다. 물론 우리가 떠나왔던 나라와 지금 우리 각자의 나라들은 정말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걸 안다. 또한 외국 생활 이후에 돌아가는 남자친구의 고국은 또 새롭게 다가올 것이고, 나에게는 적응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나라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이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이사도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 코로나 시대에 국경을 건너야 하는 이사라니! 심지어 예측했던 상황들임에도 눈앞에 닥쳤을 때 그 스트레스와 짜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먼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하기에 뷰잉을 시작했고, 우리는 나라를 떠나는 상황이기에 가구들을 가능한 많이 넘겨받을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한 커플이 광고를 낸 첫 날 저녁에 꼭 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했고 와서는 집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하면서, 가구도 다 살 테니 집주인이 레퍼런스 체크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 때 계약서를 썼어야 하는데 우리도 처음 해보는 거라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구두로만 계약을 했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 레퍼런스 체크가 끝난 후, 이 여자가 싹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고, 너네가 요구하는 가격을 다 낼 수 없다, 가구를 치워 달라... 우리를 계약에서 빼 놓고 집주인과 뒤에서 공조하려는 듯한 태도가 이미 맘에 들지 않았었지만 결국 끝에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너 때문에 우리는 시간만 낭비했고 이미 계약 조건이 들어간 계약서를 보냈으니 집을 원하면 서명해서 보내고 아니면 없던 일로 하자고 강력하게 나가자 질척대면서 좀 더 합의해보자는 게 아닌가? 사회 초년생이기엔 너무 20대 후반이나 되어서 어디서 공적인 일에 말도 안되는 게임을 하려고 하는지. 더 이상의 합의는 없다고 말하자 싹 무시하더니 일주일 더 있다가 집주인에게만 살짝 연락해 더 이상 집을 원하지 않는다고 연락을 하더라. 그런데 이 때 이미 우리는 제 2의 후보자에 대해서 레퍼런스 체크를 요청한 상태였고, 집주인은 또 이걸 잘못 알아듣고 우리의 새 후보자가 집을 원치 않는다던데? 이러면서 레퍼런스 체크를 일주일동안 미루는 게 아닌가! 이 집주인 여자도 살면서 만나기 힘든 사이코 범주에 들어가는데, 정말 아무리 우리가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말을 빙빙 돌리며 일처리를 늦추기만 했다. 이 여자는 은근슬쩍 전에 연락왔던 커플이 더 맘에 들었나보다. 그러나 리즈 트랜스퍼는 우리랑 새 세입자 사이에만 이뤄지는 계약인데 뭘 어쩌겠다. 딱 잘라서 이메일로 모든 시간과 연락을 기록해서 법적으로 2주의 시간 안에 결정해달라고 보냈더니 군말없이 체크 완료해줬다. 진짜 없던 정도 다 떨어지게 법을 들먹거려야지만 제대로 처리해주는 인간들 때문에 안 써도 될 에너지만 낭비했다.

 

이렇게 집을 해결하는 큰 문제를 헤쳐가는 도중에 프랑스는 confinement을 선언하고 외부 국경을 닫아버린다.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발표 초반 일주일 동안 국경을 닫으면 프랑스 국민만 통행이 가능한지, 어떤 예외가 있는지 아무런 세부사항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사관도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며 난감해했다. 지난 봄의 lockdown 때는 정말 오로지 프랑스 여권을 가진 사람만 통행이 가능했다는 걸 듣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캐나다에서 결혼을 하고 프랑스 정부에 혼인신고를 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해 보였지만 결혼을 하는 데에만 2개월, 그 후에 등록이 3개월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직장도 그만 둬 버린 상태에서 5개월의 겨울을 집에만 갇혀서 보낼 자신이 없었다. 아니면 PACS를 맺고 비자를 받아서 들어가는 방법, 그치만 들어가서 결혼을 할 예정인 우리에게 이건 낭비임이 분명했고 비자가 나올지 아닐지도 확실치 않았다. 혼돈의 일주일이 지나고 다행히 동거인도 프랑스인 배우자의 지위가 인정되어 예외적인 입국이 가능하다는 방침이 나왔다. 그치만 지금까지도 정확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물어보는 데마다 대답이 다르다. 갈 수는 있는 것 같아 보이니 일단 티켓을 샀고 여기 생활을 천천히 마무리하고 있다.

 

결혼식에 대한 낭만적인 계획을 세우기는 커녕 연차로 4년째를 살아오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한 감성적인 작별인사를 할 여유조차 없다는 게 허탈하다. 식은 코로나 시대에 꿈꾸기엔 너무나 사치이고, 지금의 우리에게 결혼은 정말 국제커플로서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적인 절차이기만 하다. 법적인 보호자가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지금 이 시대에 너무 크게 다가온다. 단순히 국경을 넘는 것 조차도. 우리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결혼하지 않은 수많은 국제커플들이 올 한해 내내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로 각자의 나라에서 그리워만 하고, 이별을 겪고, 대사관의 불친절한 대응에 좌절하고 있다. 쓰다보니 모든 게 얽혀서 국제커플으로의 고충으로까지 이어졌는데, 그만큼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싹 정리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일이구나 싶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올 때는 가족이 남아 있었기에 적당히 남겨놓고 부탁하고 오면 됐었는데, 캐나다는 한 번 떠나면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모든 걸 끝내고 가야 한다.

 

프랑스에 무사히 도착하면 결혼만 빼놓고는 평화로운 세 달을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또 어떨지... 이미 french administration의 불통은 여기서부터 느낄 수 있어서 걱정도 되지만 당장은 캐나다를 나가는 것만 생각해야겠다. 아직도 친구들에게 작별인사하기, 무거운 물건들 부치기, 모아둔 돈 (가능한 싸게) 환전해서 송금하기, 짐 버리기와 짐 챙기기 등등 자잘한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미 많이 폭발했고 많이 싸웠지만 내가 더 지치지 않기를 바라고 나를 잘 다독이면서 남은 3주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싶다.